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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건강과 생명을 만드는 사람들
사명이 있고 사랑이 있어 행복한 사람,
발행인 이왕재 박사 편


■ 월간<건강과생명> 이지영 기자

인터뷰 시리즈 첫 시간이라 부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늘 만날 사람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한껏 충만한 겨울 풍경 사이로 오래된 회색 건물이 보였다. 서울대 의대 건물이었다. 계단을 올라 한 연구실을 찾았다. 장난기를 살짝 머금고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 ‘건강과 생명’(이하 ‘건생’)의 발행인인 이왕재 박사였다. 명함에 쓰여진 무거운 직함들과 달리 그에게는 언제나 순박한 시골 농부 같은 웃음이 있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도 그 목소리는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깍듯한 존대와 달리 “오~ 안녕하신가!”하며 즐거운 인사를 먼저 보내기 때문이다. 덕분에 첫 인터뷰도 즐겁고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1부. 건생 이야기

우선 ‘건생’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아이로 치면 이제 17살이 되는 ‘건생’에 대해서 그는 어떤 감회를 가지고 있을까?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물론 현실적으론 어려움이 많죠.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주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의지해서 돌아보면 감사가 절로 나올 뿐이에요.“

그가 건생을 직접 책임진 것은 올해로 11년째다. 많은 사람의 눈물과 기도로 지나온 험난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길에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함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와 건생의 인연은 비타민 C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편집위원이 되었다. 그러다 1996년 어느 날, 건생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는 오랜 시간 밤잠을 설치며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발행인을 맡기로 했다. 국내 유일의 의료선교잡지를 그냥 사라지게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절친한 후배인 차한 박사(현, 가천의대 소아과 과장)와 손을 잡고 재출범을 했다.

“덜컥 잡지를 맡기는 했지만 상황이 갑자기 호전될 리는 없었어요. 더구나 잡지 자체가 수익을 우선으로 한 것도 아니었구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11년 동안 특히 재정과 관련 어려움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막다른 골목이라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역사를 이루셨어요.”

그는 건생 발행인이 되고 나서 난생 처음 빚 독촉을 경험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 채무자와 친구가 될 정도로 가까워졌지만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솔직히 뭔가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는 우쭐함이 없지 않았지만 긴 연단의 훈련 속에서 거품은 사라지고 강한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죠.”

건생 초기 시절부터 이어진 후배 차한 박사와의 인연은 언제나 큰 힘이 되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차한 아우를 만나 이 사역을 하면서 친형제보다 더 가까워졌어요.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신실한 아우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든든합니다. 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뜻 가운데 건생을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지상명령임을 생생히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물론 힘들 때도 많지만 독자들이 든든한 버팀목이죠. 뜻밖의 분들이 건생을 보고 은혜 받았다고 간증을 하거나 이런 좋은 잡지가 있는 줄을 몰랐다며 격려해줄 때 발행인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건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인터뷰01


2부. 인생과 신앙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게 마련이다. 그가 신앙 여정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강하게 체험한 것은 외동딸 ‘하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9년의 불임 끝에 시험관 아기로 갖게 된 아이는 말 그대로 무남독녀 금지옥엽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6살 때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 바퀴가 가슴을 짓눌러서 간이 거의 손상될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런데 2주만에 간이 재생되어서 중환자실에서 바로 퇴원을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일이 있은 후 신년 모임에 갔을 때 동료 교수들이 그를 격려하며 “열심히 하나님 믿더니 당신 하나님이 딸을 고쳐 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간증과도 같은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 일은 그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아이가 나았다는 감사도 있었지만 그 일을 치르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딸아이의 침상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마 내 평생 가장 많이 울었을 거에요.”

“학문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간증을 비판적으로 보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비과학적이고 기복적이라는 거죠. 하지만 진짜 간증은 달라요. 죽음으로 치닫던 아이가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거였죠.”

6살이던 하나는 이제 미술에 꿈을 가진 16살 중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3개월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덤으로 하나 엄마와의 러브스토리도 살짝 물어 보았다. 아내는 친구 여동생의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첼로를 전공하던 음대생이었는데 첼로를 들고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는 모습에 반해서 초스피드로 결혼했죠. (웃음)”

어려운 순간에도 묵묵히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는 아내가 늘 고마울 뿐이라며 사랑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부모님 쪽으로 옮겨졌다.

“저는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커요. 장로님이시고 농사를 지으셨는데 자녀들에게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 주셨죠. 어렸을 적에 매일 저녁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던 게 기억 납니다.“


아버지는 늘 시편 111편 10절 말씀을 하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면서 헛된 지식만 많고 지혜는 없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주셨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교수가 되고 간증과 강연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아버지의 기도 응답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가르침은 죽음 앞에서까지 계속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이 평소 그분의 뜻에 따라 서울의대 해부학교실에 기증되었기 때문이다. 의대 교수 부친의 시신이 기증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또 많고 많은 전공 중에 해부학을 선택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큰 방향으로 보면 영향이 없지 않았지만 직업과 전공을 선택하는 데는 특별한 경험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골에서 ‘경기도 생물경시대회’에 나갔어요. 해부와 실험을 해서 리포터를 쓰는 대회였죠. 양파, 봉숭아, 붕어, 개구리 해부 같은 걸 하는 거였고 조개 해부도 있었어요. 조개는 바다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려웠는데 의외로 우수상을 탔죠. 당시에 심사했던 교수님이 저를 많이 칭찬했지요. 과학자로서 끝까지 인내하고 관찰하는 의지를 가졌다고요.“

서툰 손으로 조개를 해부하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이제 서울대 해부학과 주임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해부의 추억이 그를 곧바로 의대로 이끈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법대를 지망했었다. 그런데 첫 해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중에 마음이 달라져서 의대에 진학했다. 해부학 역시 단번에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해부학은 의대에서 3D 직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시절 ‘전국 대학생 실험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하자 해부학 교수님이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았던 해부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떤 때는 수학을 하려고도 애써봤죠. 하지만 요나처럼 도망을 가도 하나님이 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한 생명의 비밀을 알리시려고 이 길을 걷게 하신 것 같아요.”

하나님의 역사는 부검현장에서 생생하게 일어났다. 오래 전 어느 젊은 여인의 시신을 부검할 일이 있었다. 부검대 위에 누워있던 여인은 언뜻 보면 잠자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칼로 가슴을 절개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로 생기(生氣)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기, 그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생명은 단순히 심장이 뛰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삶 속에 늘 함께 있는 것이 생명이다. 내 말을 알아듣는 그 힘, 한여름 한줄기 바람에서 느끼는 시원함, 아플 때 아프다고 느끼는 그 힘이 바로 생명이다.”



3부. 비타민 C와 건강 이야기

그를 인터뷰하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야기, 비타민 C! 사람들은 흔히 그를 가리켜 비타민 C 전도사라고 부른다. 비타민 C의 효능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생명을 지켜주는 거지요.”

비타민 C는 특히 동맥경화 예방에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데 학술적으로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비타민 C는 ‘항바이러스 효과’가 특별해서 그는 비타민 C와 함께 한 지난 20년간 감기로 고생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감기 기운이 있어도 그냥 약하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비타민 C는 소화기 계통 특히, 위장과 대장 질환에 예방효과를 보이며 혈관에 관계된 부분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사실 지금이야 비타민 C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효과가 많이 입증되었지만 처음 발을 디딜 때만해도 임상실험대상자 1호(?)는 그 자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가족, 교회 식구들, 동료들로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더욱 다양한 효과를 입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뇨가 깊어서 몇 개월 밖에 살기 어렵다던 부친은 비타민 C를 복용하고 10년 이상을 더 사셨다. 장인의 경우 심한 동맥경화로 한쪽 눈에 부분적 시력상실이 왔었는데 비타민 C를 열심히 복용했더니 70∼80% 정도 사라졌던 시력이 거의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부친이나 장인 모두 동맥경화성 질환을 앓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효과를 통해서 비타민 C가 동맥경화 예방뿐 아니라 부분적인 치료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모도 중풍으로 쓰러져 왼쪽을 거의 쓰시지 못했는데 완벽하게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비타민 C 연구논문이 10여 편이 나와서 학문적인 기초가 튼튼해졌고 최근엔 악성종양치료에 비타민 C가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연구하여 해외 유명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그의 비타민 C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www.vitamin-c.co.kr )

비타민 C는 이제 몇몇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최근에는 국민가수로 유명한 J씨가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어와서 비타민 C를 꾸준히 복용하고 있는데 더 알고 싶다고 해서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건생에 근무하면서 비타민 C 관련 전화 문의를 받고 얼떨결에 홍보 대사 역할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주위에 비타민 C를 잘 아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함께 식사할 때면 곳곳에서 ‘딸깍’(비타민 C 꺼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곤 한다. 때로는 깜빡 잊고 비타민 C를 안 가져와도 서로를 챙겨주는 ‘비타민 C 동지’들이 적지 않다.

4부. 일과 성공 이야기

그는 서울대 해부학과 주임교수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으로, 또한 비타민 C 전도사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명예를 얻었다. 예를 들면 2004년 7월, 세계적 권위를 가진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에 이름이 등재되었고, 세계 3대 인명센터 중 하나인 영국 국제인명센터(IBC)로부터 ‘2005년 올해의 의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성공이란 무엇일까? 2006년에 출간된 《대한민국 50대의 힘》(탁석산 지음)에 보면 그의 독특한 성공관이 나온다. 그는 성공을 ‘양심의 자유’라고 표현했다. 그 의미를 물어보았다.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맞춰져야 해요. 돈이나 명예가 기준이 아니죠. 예를 들어 돈이 많은 것은 오히려 재앙이 되기도 하니까요. 자기 양심이 이야기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게 진짜 성공이죠. 자기 생각대로 추진할 수 있고, 그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자유를 가졌을 때 성공을 이룬 것이 아닐까요?”

바쁘게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세월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은 변해요. 나이를 먹으면 달라지죠.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변하지 않아요. 물론 절대로 변해서도 안 되는 거죠. 우리 생각은 지식과 깨우침에 따라 변해가죠.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한결 같으면서 점점 깊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와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만천하 모든 이들이 건생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뭔가 철학적인 대답을 기대했는데 역시나 그는 언제나 건생에 푹 빠져있다. 사랑이자 사명이다. 지금까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과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물었을 때도 비슷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건생 발행인이 된 거죠. 가장 잘한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잘못한 일입니다. (웃음)”



웃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깊은 무게가 느껴졌다. 지난 날에 대한 감사와 앞날에 대한 소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의 이름 그대로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수고하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앞으로 남은 인생 역시 그 길로 달려갈 것이 분명하다. 때로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기도 하겠지만 모든 겨울에는 뜻이 있다는 것을 배워왔기에 앞으로도 힘차게 걸어갈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에게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건강과 생명을 주는 두 가지의 비타민 C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잘 아는 대로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비타민 C였다. 하지만 숨겨진 또 하나의 비타민 C가 있다. 바로 그의 인생에 생명과 사명을 주는 ‘영혼의 비타민 C - 비타민 Christ’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주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를 말했다. 자신의 모든 것이 그분의 선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알면 알수록 소탈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면서 동시에 좋아한다.

세상에 귀한 일이 많이 있지만 문서를 통한 선교는 가장 귀한 일 중의 하나다. 신실한 청교도였던 토마스 브룩스는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책들은 저자가 설교 할 수 없을 때, 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감히 하지 못할 때, 더더욱 저자가 없을 때에도 설교할 수 있다.”

건생은 화려하지 않은 잡지다. 다른 책들 틈바구니에 있으면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왕재 발행인을 비롯한 건생 가족들은 토마스 브룩스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건생을 만들고 있다. 건생이 어디에서든 꼭 필요한 누군가를 만나서 건강과 생명을 전해준다고 믿는 것이다.

월간 건강과 생명

인터뷰 내내 참으로 따뜻했다고 고백해야겠다. 사명, 사랑, 생명 이 세 단어가 인터뷰 내내 나에게 행복한 도전을 주었다고 덧붙여야겠다. 다시 나선 거리는 아직도 겨울이었지만 이전처럼 춥지 않았다는 말도 빼놓지 말아야겠다.

월간 <건강과 생명> 2008년 1월호 www.health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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